생식

정경대 몸에 맞는 약 밥상

정만호 2013. 6. 24. 20:06

 
 
[그린경제=정경대 한국의명학회장] 1994년이라 기억된다. 당시 인도에서 막 돌아온 뒤 북경대학 입학통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한의학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차지하고 있던 지산 박인규 선생의 의원에서 여러 달을 숙식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계룡산에서 수도하고 있다는 한 도인이 필자를 찾아왔다. 그는 한때 단학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어느 도인 문하에서 수련을 공부를 하다가 그만 병이 들어 산속에 있다 하였다. 그가 배운 수련이래야 고작 아랫배 단전에 마음을 집중하고 배를 불룩이며 숨을 쉬는 것이라 하였다. 요즘도 그런 걸 가르치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간 그는 숨을 잘 못 쉬어서 숨 병에 걸린 사람이라 할 수 있었었는데 다른 것은 차치해두고라도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몸은 꼬챙이처럼 마르고 얼굴은 검었다. 손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서 전형적인 심장 허약 환자였다. 그래 안쓰러워서 음식은 무얼 먹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땅만 보고 산길을 걷는데 오행생식을 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해서 일 년째 조리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있다 하였다. 그러니까 밥도 생쌀, 반찬도 푸성귀를 그냥 씹어 먹는 사람이었다.

“조리하면 영양분이 파괴되고 또 과식하기 때문에 위장에 무리가 가서 좋지 않다. 그러나 생식은 영양분이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적게 먹어도 위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얼핏 듣기에 맞는 말 같다. 그러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자연의 모든 것은 영양분은 물론 약성도 있고 독성도 있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생식을 배왔다면야 오장육부가 잘 적응이 되어있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조리한 음식에 오장육부가 길들여져 왔다. 그러므로 그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나 적은 양의 생식을 오래 하다 보면 오장도 크기가 줄어들고 역동성도 떨어져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 큰 사람이 갑자기 생식을 하게 되면 독성이 있는 식품에 중독될 수 있다. 더더욱 체질이 냉한 사람은 생식이 위험하다. 심장은 양이고, 위장은 덥지도 차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지음이고, 폐는 소음이고, 간은 소양이며 신장은 음이다. 양은 양기(火氣)이고 음은 수기(水氣)다. 체질이 냉하다는 것은 수기(水氣)가 많다는 뜻이며, 수기가 많으면 면역력도 떨어진다. 간이 혈을 충분히 머금지 못하고 심장이 혈을 충분히 생하지 못하고 폐가 혈을 온 몸에 보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기가 많은 찬 생식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당장 소화부터 잘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신장은 더욱 약화되고 소장이 차서 영양분을 흡수하기 어렵고 대장이 차서 음식찌꺼기를 소화시키지 못해 배가 우글우글 끓을 것이며 신장은 더 차서 탁기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장육부가 온통 병들 수 있다. 더욱이 체질을 모르고 이것저것 생식을 하게 되면 약을 잘못 먹는 것이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필자를 찾아왔던 그 도인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충고를 들은 그는 석 달이 못 가서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들숨을 길게 날숨을 짧게 억지로 쉬던 숨을 자기 호흡에 맞게 자연스럽게 쉬면서 단전호흡을 하다 보니 잘 못 쉰 숨으로 인한 부작용도 없다 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혹은 남편이 혹은 아내가 아니면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비만이나 건강을 위하여 생식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거든 필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만류하는 게 좋겠다. 다만 속 열이 있는 체질이라면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오래 할 것은 못 된다. 오장이 무기력해질 테니 말이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hs성북한의원 학술원장)